안녕하세요, 우리. 오늘의 긴 편지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이른바 취준생이었습니다. 뭇 ‘준비’의 과정이 그렇겠지만, 당시의 저는 참 많이도 지쳐 있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 둘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하고 싶던 일을 찾아 반짝이는 것도 같은데 저는 그저 대학교 졸업장만 하나 받은 열 아홉 그대로 머물러 있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우울감과 외로움이 심해질 무렵에는 유튜브를 틀고 성공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기에 꽤 적합했거든요. 앞서 걸은 이들의 성공 방정식을 듣고 있자면 헐렁하게 비어 있는 하루를 꽉 채우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분’은 참 모순적이게도 나를 꽉 채움과 동시에 순식간에 빠져 나갔습니다. 참 공허했습니다. 반짝이는 이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끊임없이 달려나가는데 저는 고작 회사 하나에도 붙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준비생’이었으니까요. 사랑하는 일을 가진 이들은 참으로도 빛나 보였습니다. 반면 스물 중반이 되면서도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인생이 참으로도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죠. 저는 늘 그렇게 미지근했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입맛, 비슷한 취향.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친구와 유사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평범한 취향. 그래서 무작정 아끼는 것 중 제일이었던 영화를 미친 척 좋아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텅 빈 마음을 빼곡하게 채워넣을 것이 필요했거든요.
그날 인스타그램을 뒤져 무작정 영화 모임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에 가입했습니다. 그 클럽은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혹시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참 신기하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니 가슴속 한껏 응어리진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더군요. 정작 부모님에게도, 아주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모나고 아프고 그렇게 끝내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요. 그날 우리는 영화 ‘소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개인의 감상평을 말하는 시간에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열렬하게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열정에 불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참 미지근한 사람인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이들 앞에서 그렇게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다니요. 그렇게 한참 지났을까요. 기나긴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갈 무렵, 갑자기 어떤 크루원 한 분이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OO님. 저는 OO님이 좀 미지근하게 살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영화 소울의 메세지가 그렇잖아요.’ 우리, 저는 아직도 그 찰나의 다정을, 용기를, 사랑을 안고 삽니다. 한참 전 대화를 복기하며 그 말을 건네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모르는 이들의 대화를 파고들기 위해 몇 번의 침을 삼켰을지. 나라면 감히 전하지 못했을 그 따뜻한 문장이 제 길고 외로운 싸움을 견디게 해 준 버팀목이 된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어떤 날에는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보다 나에 대한 판단이 서기 전의 사람이. 길고 긴 응원과 위로보다 영화 한 편이 다시 내일을 살 힘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녘은 세상의 모든 ‘우리’에게 그런 편지가 되고 싶습니다. 엉망으로 망친 시험지를 품에 안고 걷는 길목이라면, 근무 중 실수가 손끝 거스러미처럼 거슬리는 지하철이라면. 또 누군가가 툭 뱉은 말을 삼키지 못하고 되새김질하는 방 안이라면 우리만의 아주 사소하고 또 거대한 고민을 녘에게 들려주세요. 당신에 대해 그 무엇도 판단하지 않은 또 다른 우리가 마음을 꾹꾹 눌러 쓴 편지와 함께 영화 한 편을 선물할게요. |